‘사랑해요’  강화!

내가면사무소에서 고비고개로 가다가 매점 조금 지나 왼편 수도원 표시판 쪽으로 길을 꺽었다. 저수지 수면에 물안개가 아스라이 피어오른다. 깐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깨끗한 아스팔트길을 거쳐 오상리 고인돌을 지나자 좁은 흙길이 나타났다. 이 길 끝에 인가가 있을까 의아스러운 마음이 들어 갑자기 조급증이 나려는데 조각들이 많이 있는 마당이 보였다.

김주호작가(59)는 밖에 있다가 반갑게 맞아준다. 부인 박루미(56)씨가 차를 내 왔다. 작업실에서 내려다보이는 내가저수지의 모습은 매우 아름답다. 작업실의 색감 좋은 황토 빛 얼굴을 한 해학적인 조각들에 절로 웃음이 머금어진다. 만화 속 주인공들이 툭 튀어 나와 서 있는 것 같다. 심각한 문제로 고민하던 사람도 여기 작업실에 들어서서 이곳에 진열된 여러 인간 군상의 모습을 한 얼굴표정과 행동을 보게 되면 굳은 얼굴을 풀고 미소를 짓게 될 것 같다.

미술가로서의 강화에서의 삶

김 작가 가족이 강화로 온 것은 1992년. 그의 나이 마흔 두 살 때이다. 당시 보성중고등학교 교사로 학생을 가르치다가 전업 작가로서 작품에 전념하기로 마음먹고 이곳으로 아주 옮겨 앉았다고 한다. 처음 살게 된 곳은 내가면사무소 건너편 바로 아래 빈집, 초등학교 바로 옆이다. 한 5년 정도 그 집에 전세로 살다가 근처인 오상리에 땅을 마련해 지금의 작업실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니 두 딸은 강화가 고향이나 다름없다. 큰 딸은 내가 초등학교를 거쳐 삼량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지금 프랑스에 미술 공부를 하러 가 있고, 작은 딸은 강화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의 건축과에 다니고 있다. 부인 박 씨는 글을 쓰고 있다. 작년에 책을 한권 냈다고 한다.

‘한식 때 비 한 방울이라도 들치고 흐리기만 해도 도랑물이 20리는 간다.’는 말은 한식 무렵 농사철에 강화사람들의 비를 바라는 절실한 마음이 충분히 담겨있는 말이다. 부인 박 씨는 주변 분들의 그런 말들을 엮어 내려 한다. 땅으로 먹고 사는 것은 옛날부터 해 오던, 방법만 기계화 되었을 뿐이지 그 마음, 정서, 문화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동네 분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 속에는 생활의 아름다운 정서가 녹아져 있다. 철학과 문학이 있다. 내가면의 동갑내기 철물점 사장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시 구절, 소설의 문구만큼이나 멋지다고 김 작가는 그 표현이 감탄스러울 정도라고 덧붙인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거의 동네 끝이고 외딴 곳이어서 적막하기는 하지만 작품 활동하기에 좋다고 한다. 살림집과 작업실이 따로 있고 작은 텃밭도 있어 고추, 토마토 등 식구들의 먹거리 정도는 스스로 해결한다. 풀 뽑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다. 이제는 두 사람의 서울 생활이 가뭇가뭇해질 정도로 강화에서 살아온 세월도 만만치 않다.

김 작가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 초까지 박한진, 이건용 작가와 함께 소마미술관에서 ‘쉬지 않는 손, 머물지 않는 정신’ 이란 작품전시회를 했다. 30년 이상 성실하게 작품제작에 매진하면서 독특한 예술세계의 영역을 개척한 세 분 작가를 모셨다고 소마 운영위원에서 밝힌바 있다. 제목만큼이나 그의 손은 쉬지 않았고,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하는 조각가였다. 겨울철에는 돌 작품 하기가 좋아 요즘은 김포의 누산리 돌 공장에서 돌 작업을 주로 한단다. 김 작가는 작품에 흙, 나무, 돌 등 주로 자연친화적인 재료를 쓰지만 굳이 한정짓지는 않는다고 했다. 주제는 일상에서 보이는 사람에 대한 느낌들, 이웃의 모습 등에 관한 것.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늘 그는 생각한다고. 그 생각들은 작품으로 나타난다. 지금도 그는 전주의  갤러리 GONGYOU에서 ‘가족’이란 타이틀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강화라는 지명만으로도 특별함을!

김주호 작가는 강화에 온지 횟수로 10년만인 2001년에 강화군청 민원실에서 개인전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를 열었다. 그 당시 작품 카탈로그만 보아도 그의 해학 넘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웃음 짓게 하는, 인간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다.

그는 강화로의 선택에 대해 ‘미술가로서의 위치는 공고히 되었다고 생각한
다.’고 말했다. 강화라는 곳이 예술가에게는 뭔가 특별함을 부여한다는 생각도 덧붙였다. 강화라는 지명으로도 혜택 받는 것 같다며 웃는다. 그의 ‘하하’ 웃는 모습이 어디선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모습이 그의 작품 속 해학적인 웃음의 원천은 아닐까. 너무나 닮아있는 모습..

작품이 작가를 닮는 것일까? 작가가 점점 작품속의 웃음을 닮아가는 것일까.

<프로필>

- 1976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1986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 졸업
- 개인전 : 1986년 이후 10회
- 단체전 :
2007 신소장품전(국립현대미술관), 봄의왈츠(성남아트센터), 몽상(갤러리 담), 4인행(한 갤러리)
      애주가 전(갤러리 각), 세상보기(마니스 아트센터), 마음대로(갤러리 준)
2006 미소(갤러리 조선), EHS Project(세종문예회관), SIPA 2006(예술의 전당)
      Happy Puppy(씽크씽크 아트뮤지엄), 서울미술대전(서울시립미술관)
1986 79인의 서울(관훈미술관) ~  2005 찾아가는 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등 다수작품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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