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화 여행의 시작은 역사관에서부터
-유적지를 찾아서
강화도에는 볼거리가 많다. 휴일이 되면 대도시에서 온 여행객들로 인해 교통 체증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강화도가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강화도의 면적이 293㎢로써 여의도보다 34배나 큰 섬이다. 해안선 길이만 해도 99㎞에 이른다. 거기에다 유적지와 관광지가 강화도 전체에 산재해 있어서 대강 돌아본다 해도 하루해가 짧다.
강화도는 마니산의 참성단을 비롯해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의미를 지닌 일이 숱하게 일어난 것으로 보아 한반도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을 짜임새 있게 돌아보려면 먼저 강화역사관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김포시에서 48번 도로를 따라 오다가 강화대교를 건너 첫 삼거리에서 해안 순환도로 쪽으로 좌회전하면 바로 강화역사관(전화 : 032-933-2178)이 나온다.
강화역사관은 1984년에 착공하여 ’88년 9월에 개관했다. 그 후 2001년 4월에 전시실 내부를 재정리하여 오늘에 이른다. 역사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전시실 건물과 야외 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관에 소장된 유물은 580여 점에 이른다. 네 곳의 전시실에 164 점이 전시되어 있고 수장고(收藏庫)에 416점이 보관되어 있다.
역사 유물은 비록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어느 것 하나 귀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강화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그 가치가 높아서 보물로 지정된 것이 많다. 역사관에는 특기할 만한 유물이 여러 점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역사적 상징과 철학이 담긴 유물들을 살펴보면 현대사회와 우리의 삶을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역사관 돌아보기
․ 제1전시실 -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면 강화도 역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해 주는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다. 단군과 함께 개국의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참성단, 천문도, 고인돌, 조선시대 관복 등이 디오라마[diorama]로 표현되어 있고 선사시대, 구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있다.
․ 제2전시실 - 강화도의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곳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팔만대장경의 제작 과정을 디오라마로 재현되어 있다. 보물 제 11호로 지정된 강화동종과 강화도령으로 일컬어지는 철종을 신하들이 모시러 오는 12병풍의 강화행렬도, 고려시대의 청자와 조선시대의 백자, 강화의 특산물인 화문석과 반닫이가 있다.
․ 제3전시실 - 강화도의 특성과 충의정신을 나타내는 곳이다. 강화의 외성 ․ 내성 ․ 돈대를 축조하는 과정과 삼별초의 대몽 항쟁이 디오라마로 재현되어 있고 정묘호란, 병인양요 때의 유물인 조총과 활이 전시되어 있다.

․ 제4전시실 - 구한말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강화인의 자주정신을 소개하는 전시실이다. 병인양요 때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과 전투하는 장면, 신미양요 때 광성보에서 미군의 침략에 대항하여 싸우는 광경을 디오라마로 재현했다. 양헌수 장군과 어재연 장군 영정(影幀)이 있고 구한말의 총과 총통류가 있다.
․ 야외 전시장 - 67기의 비석군, 이섭정, 해선망어선, 홍이포가 전시되어 있고 400살 된 탱자나무가 자라고 있다. 전시장 동쪽으로 갑곶돈대가 있다.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
역사관 제2전시실에는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靑磁辰砂蓮花文瓢形注子)가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높이가 32.5㎝인 이 주전자는 몸체가 연꽃 형태이고 전체적으로 표주박 모양을 하고 있다. 고고한 비취빛 청자 색깔과 꽃잎을 돋보이게 하는 붉은색 진사가 어우러져 매우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이 작품은 제작 연대로 보아 고려인의 뛰어난 장인 정신을 느끼게 한다.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의 진품은 현재 호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세계 10대 도자기 중의 하나로써 고려청자의 대표적인 명품이다. 일설에 의하면 1963년 경 강화에 소재한 최항(崔沆 ?∼1257)의 묘에서 도굴꾼에 의해 묘지석(墓誌石)과 함께 출토된 후 여러 경로를 통해 재벌 기업의 모 회장에게 흘러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화동종
역사관 제2전시실에 있는 강화동종은 사인비구주성동종(思印比丘鑄成銅鍾)으로 일컬어진다. 동종을 주조한 사인 스님은 조선조 현종과 숙종대에 활약한 승장(僧匠)으로서 전통적인 기법에다 독창성을 가미하여 당대의 공예미를 돋보이게 하는 작업을 했다. 그가 만든 종은 총 8구가 남아 있는데 강화동종은 1711년(숙종 37년)에 만들어진 것으로써 총중량 3912kg, 높이 198㎝, 구경 138㎝의 거종이다.
강화동종은 강화성 4대문의 개폐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읍을 점령했던 프랑스군은 조선군대에 쫓겨 관청을 불사르고 도서 345권과 은괴 19상자를 약탈해서 퇴각했다. 그때 여러 병사가 군함이 있는 갑곶진(甲串鎭)으로 강화동종을 가지고 가다가 너무 무거워서 갑곳리 중로에다 내팽개치고 갔다. 남문 동쪽 종각에 보존되어 왔던 동종은 1977년 고려궁지로 옮겨졌다. 이후 3.1절과 광복절, 그리고 제야에 33번씩 타종을 했다. 그러나 몸통 부분에 금이 가서 1995년에 타종이 중단되었다. 1999년 12월에 똑같은 종을 만들어 고려궁지에 놓고 강화동종은 강화역사관으로 옮겨졌다.
비석군
역사관 광장에는 금속활자 기념비를 비롯해서 67기에 달하는 비석이 서 있다. 불망비 ․ 송덕비 ․ 선정비 ․ 하마비 등 내용과 모양이 다양하다. 그런데 이 비석군은 지금의 강화대교 입구에 있는 공동묘지 앞쪽에 있었다. 또한 비석군이 형성되기 전에는 강화의 각지에 흩어져 있었는데 그것을 일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도로 한군데로 모아 놓게 된 것이다. 어떠한 유물도 그 현장에 있지 않으면 의미가 퇴색된다. 그런 뜻에서 비석군을 역사관으로 옮겨 놓은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갑곶돈대
사적 제306호인 갑곶돈대는 1656년에 갑곶진(당시에는 제물진이라 함)이 설치된 이후, 숙종 5년(1679년)에 축조했다. 갑곶진은 김포로 건너가는 나루터로써 관문 수비의 요충지였다. 조선조 말에는 외세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해 고종 8년(1871년)에 갑곶포대를 설치하여 대포 8문을 배치했다. 그 뒤 100여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1977년에 홍이포(紅夷砲) 진품 1문과 불랑기(佛狼機) 복제품 2문을 설치하여 옛 수비대의 모습을 복원했다. 돈대 내에는 몽고와 외교 협상을 자주 벌였던 이섭정(利涉亭)이 있는데 이곳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여 보인다.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면 온갖 역경을 다 겪으며 나라를 지켜 내려 했던 선조들의 노고가 눈앞에 그려진다.
탱자나무
역사관 옆에 천연기념물 제78호인 탱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강화도에서는 이곳 말고도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화도면 사기리의 탱자나무를 비롯해서 일반인 가정집 울타리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이 나무는 남귤북지(南橘北枳)라고 해서 남쪽에서는 귤이 되지만 북쪽으로 올라오면 탱자가 된다. 꽃이 향기롭고 열매가 달리는 반면 가시가 날카로워서 울타리용으로 제격이다. 탱자나무는 제주도와 같은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는 식물로써 추운 지방의 한계선은 중부지방이다. 선조들은 강화내성과 외성의 성벽 바깥쪽으로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탱자나무를 빽빽하게 심었다. 강화도에서 탱자나무가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은 외침이 잦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고 식물이지만 유물로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갑곶돈대 탱자나무는 한반도의 역사만큼이나 풍찬 세월을 이겨 내고 오늘도 푸른 나무로 꿋꿋하게 서 있다.
참고 자료 - 강화사, 강화역사관
글 ․ 사진 / 유영갑(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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