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만 열면 손에 잡힐 듯 훤히 건너다 보이는 고향집을 그리던 또 한분의 실향민어르신께서 영면하셨다. 마지막으로 뱃길로 고향을 한번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그도 이루지 못하고 쓸쓸히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그의 나이 85세, 피난 후 줄곧 교동도에서 54년간 이제나 저제나 고향뱃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통한의 세월을 보냈다. 큰 형님네와 철모르는 4살박이 아들을 두고 나올 때만 해도 ‘길어야 일주일이야!’ 하며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가족들과 곧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와 함께 허둥지둥 나룻배를 타고 나온 것이 전부였다.  

그의 고향은 쌀이 많이 나는 곡창지대로서 인심 좋고 풍요로움이 넘쳐나던 연백평야였다. 6.25 전시에는 인민군들이 양식이 많았던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하였던 터라 마침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B29 미공군기의 집중사격을 받아 초토화가 되었던 것이다. 농민들은 폭탄세례로 화마가 된 동네를 잠시 피신하여 이웃동네로 지내던 교동도로 건너오게 되었다.

한강하구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강화도 민북지역과 교동도는 전시뿐만 아니라 휴전 후에도 특공대들의 활약이 계속 이어져 강물이 밀고 써는 틈을 타서 서로 상대방의 지역을 들고나면서 소탕작전을 펼쳐왔다. 이 와중에 한 동네처럼 소통하며 살아왔던 북과 남의 사람들은 생소하기만 한 이념이라는 잣대로 집단몰살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사상이 다르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혈연보다도 이웃과의 끈끈한 정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사상이라고 한들 이것을 이해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실향민 어르신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가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던 그의 아내가 병석에 누워 있는 그를 보며, “당신의 병은 고향을 그리다 생긴 병이지요.” 하며 평소 남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애틋한 시 한편에 담아 읊어준다.

격강천리라더니/ 바라보고도 못가는 고향일세/ 한강이 임진강과 예성강을 만나 / 바다로 흘러드는데 / 인간이 최고라더니 날짐승만도 못하구나/ 새들은 날아서 고향을 오고가련만/ 내 눈에는 인간을 조롱하듯 보이누나/ 비 오듯 쏟아지는 포탄 속에 목숨을 부지하려 허둥지둥 나왔는데/ 부모형제 갈라져 반백년이 웬 말인가?/ 함께 나온 고향친구 뿔뿔이 흩어지고/ 백발이 되어 저세상 간 사람 많은데/ 남은 사람 고향발 디딜 날 그 언젠가?   

어르신은 굳이 선산에 봉분을 마다하고 고향보이는 곳에 뿌려달라며 눈을 감으셨다. 그의 자녀들이 아버님의 유골을 모시고 교동면 지석리 망향단에 올라 큰 절 올리고 아버님을 고향으로 훨훨 보내드렸다. 때마침 한 무리의 철새들이 고향 찾는 한 영혼을 맞듯 날아올랐다. 이제 꿈에도 그리던 부모형제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하늘에서 영원히 영면하시기를 빌어본다.

   (김시완 :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에서 피난온 실향민. 강화군 교동면 대룡2리 매바지 에서 거주하시다 2009년 3월29일 작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강화군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