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업 : 문화예술인/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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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산의 서북쪽 능선에 낙조봉과 적석사가 위치해 있고, 저 아래에 커다란 은쟁반 같은 내가저수지가 있다. 그리고 저수지가 바라다보이는 내가면 오상리 골짜기에 조각가 김주호의 작업실이 있다. 400평의 대지에 살림집과 함께 지어진 작업실은 자연의 일부처럼 소박하다. 대문이 없는 그의 거주지로 들어서면 하얀 진돗개가 짖는다. 하지만 이내 꼬리를 흔들며 손님을 반긴다. 진돗개는 사람을 만나면 편안하게 웃어 주는 주인을 닮았다.

 

작업실 안마당에는 작은 조각공원처럼 크고 작은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필자가 그곳에 들어섰을 때 내가저수지 쪽에서 따스한 바람이 불어왔다. 저수지의 맑은 물은 망월평을 적셔 주는 생명수다. 저수지 위로 봄 햇살이 떨어져 하얗게 부서졌다. 갈(喝)이라고 하는 적갈색의 테라코타 작품 하나가 저수지를 향해 앉아 있었다. 조각가의 자의식이 테라코타에 투영된 것일까. 테라코타 작품은 세상을 향해 뭔가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1949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난 김주호는 1976년 서울대 조소과를, 1986년에는 동 대학원을 다녔다. 대학을 졸업한 후 미술교사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작업을 해 왔다. 그러던 중 대학원을 졸업하던 해에 서울의 제3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88년에는 바탕골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회색 도시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직장에 다니는 한 작품에 몰입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학교생활을 접었다. 그리고는 전업 조각가의 길을 가기 위해서 1992년 10월에 홀연히 강화도로 내려왔다. 조각에 대한 꿈과 열정이 그만큼 컸던 것이다.

미소 속에 담긴 고뇌

이 땅에 서양 조각이 도입된 것은 일본 동경미술학교 조소과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김복진(1901년~1940년)에 의해서다. 이전까지의 우리나라 조각은 불상 ․ 미륵불 ․ 부도로 상징되는 불교조각과 왕릉을 지키는 문무인석 ․ 동물상 등의 능묘조각이 주를 이루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부장품의 하나인 토우와 도용(陶俑 : 흙으로 만들어 구운 인형), 울주군 대곡리의 반구대바위그림, 천전리바위그림 등을 들 수 있다.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암벽화를 보면 인간은 본래 그 내면 속에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비롯된 창작의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어떤 소설가는 뉴욕 얘기를 쓰기 위해서 뉴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갔다고 한다. 어떤 대상을 관찰하려면 그 대상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비로소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김주호는 작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를 갈망한다. 그가 인적이 드문 강화도로 온 것은 서울, 나아가 세상을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김주호는 인생과 삶의 단면을 해학과 재치, 유머와 풍자로 드러내는 조각가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 표현할 때도 신랄하기보다는 익살스럽다. 서울에는 정치, 경제, 사회, 윤리 등 한 시대의 문화와 가치관이 집적회로처럼 집중되어 있다. 국회의사당 앞이나 도심 한복판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불빛이 화려하게 빛나고, 유행이 일어났다가 스러지고, 사건 사고가 넘치고, 부정부패가 판을 친다. 그 속에서 삶이 버거워 아우성치거나, 때론 비굴하게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천착해 가는 것이 김주호의 작품 세계이다. 최근에는 강화도 주민에 대한 관찰이 깊어지고 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작품으로 재구성될 가능성에 대해서 굳게 믿고 있다. 어떤 대상이 포착되면 특징을 재빠르게 머리 속에 입력시킨다. 그 영상이 오래도록 남아 있다면 눈을 감고 비례, 양감 등의 형태를 하나씩 지워 간다. 그러면 결국 형상화시킬 수 있는 이미지만 남게 된다.
“마애불의 미소처럼 여유 있고 넉넉한 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그렇게 말했다. 서구의 조각처럼 정교하고 비례가 완벽한 것은 생리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마애불처럼 그는 잘 웃는다.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저절로 푸근해진다. 그러나 그는 창작하는 사람이다. 웃고 있어도 왠지 고독해 보인다. 창작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작업인 것이다.

조각가로 살아가기

작년 가을, 그는 고려산에 올라갔다가 눈에 띄는 나무를 발견했다. 상수리나무의 곁가지가 구상 중인 작품과 딱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그는 작품에 욕심을 내어 생나무를 자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지치기를 하는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서 곁가지를 잘랐다. 그것을 가지고 산을 내려오는데 경찰관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불법으로 나무를 자른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출동했다는 것이다. 경찰관이 보기에 별일이 아니어서 그냥 돌아갔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저 빙긋이 웃기만 했다. 재미있는 한낮의 해프닝이었다.
그는 작품의 재료를 굳이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나무로 해야 할 것을 흙으로 하거나 화강암으로 만들 것을 나무로 하지는 않는다. 주제에 따라 재료가 선택되어지는데 때론 재료에 의해 주제가 결정되기도 한다. 움직이는 작품을 몇 점 만든 적이 있다. 그것들은 버려진 센서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가 애용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오래된 집을 철거할 때 나오는 낡은 목재다. 광화문 앞에 전시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백 년 만의 외출’은 바로 그런 목재를 이용하여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처럼 폐품도 그에게는 훌륭한 재료가 된다.
그의 작품 중에는 테라코타가 많다. 구운 흙이라는 뜻의 테라코타 작품은 점토로 형태를 만든 후 유약을 바르지 않은 상태에서 대략 800℃ ~ 900℃로 구워진다. 중국에서는 테라코타와 같은 방법으로 도용을 만들어 죽은 자의 집(무덤)에다 넣었다. 한반도의 무덤에서 발견된 토우도 같은 과정으로 구워진 것이다. 테라코타는 대체적으로 붉거나 갈색을 띤다. 점토에 산화철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토에 어떤 광물질을 섞느냐에 따라서 다른 색깔도 나온다.
“파격미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최근 들어 그는 전시회를 앞두고 테라코타에 색깔 입히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흙으로 빚은 작품을 800℃에서 초벌구이를 한 후 유약을 발라 1000℃에서 구워 1차 채색을 하고, 다시 저화도 유약을 원하는 부분에 바르고 760℃에서 구워 2차 채색을 한다. 이번 전시회는 겨울 내내 준비해 왔던 테라코타 작품을 선보이는 것으로써 제목이 ‘패션 2006’이다. 그는 미에 대한 개념을 파격적으로 뒤집어 보고 싶다고 한다.
“공무원의 문화의식에 대해서 실망스럽습니다.”
마니산 입구에 타원형의 조형물이 하나 서 있다. 그런데 설명문에는 ‘강화도에서 시작하다’라는 제목만 있을 뿐 작가가 누구인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군청에서 공모를 통해 만들어진 그 조형물은 공공조각의 의미를 갖는 작품으로써 원작자는 바로 김주호다. 조형물이 그곳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군청 직원의 방임과 시공업체의 횡포, 그리고 지방자치제에서의 감사 기능이 미약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김주호는 이 시대에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일을 통해 깨달은 바가 많다.
평소에 그의 작업실은 조용하다. 넓은 공간에 부인 박루미(53세) 씨와 단둘이 생활하고 있어서 단출하다. 장녀는 프랑스로 유학을 갔고 둘째 딸이 대학생활을 하느라 도회지로 나가 있다. 부인은 그의 훌륭한 매니저이자 비평가이다. 완성된 작품을 놓고 커피를 마시며 부인과 품평회를 하는 것도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다.
그의 작품은 대전시립미술관, 모란미술관, 김포국제조각공원, 김천문화공원 등지에 전시되어 있다. 그동안 8회의 개인전과 숱한 그룹전, 초대전 등을 통해 그의 품을 떠난 작품이 200여 점에 이른다. 자식 같은 작품이 이따금 그리워진다고 한다.
-작업실 연락처 : 032-932-9749  019-389-9749

 

글 ․ 사진 / 유영갑(본지 편집위원 소설가)